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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30 | 168
이 글은 '삶이 아름다운 14가지 이유'에 포함된 글 중에 하나입니다.
글 내용 전체를 보고자 하는 분은 [새로운 사람들]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글이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이 글외에도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산 속 깊은 마을에 한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아이는 넓고 푸른 들판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어느덧 성숙한 처녀로 자라났다. 어느 날 이 처녀는 작은 보퉁이 하나를 싸들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바다를 보러 가겠다고 말했다.
일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일렁이는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상큼한 바닷바람을 입술에 느껴 보는 것, 그것이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처녀의 간절한 소원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낮익은 길을 따라 계곡을 내려왔다. 먼 길을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좀 쉬었다 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바다를 보러 가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리는 이들도 있었다.
바다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도 처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친절한 초대를 받으면 고맙게 받아들였지만 그녀가 한번 선택한 길을 포기한는 일은 없었다. 그녀를 바다로 이끌어 줄 길을.
먼 길에 무척이나 지친 어느 날 처녀는 네 갈래 길에 이르렀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이 험준한 산 앞에서 넷으로 갈라져 둘은 왼쪽으로, 둘은 오른 쪽으로 산을 둘러가고 있었다. 처녀는 어떤 길로 가야 할지 몰랐다.
처녀는 한참이나 그렇게 앉아 있었지만 네 길 가운데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길이 바다로 향하는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낮선 사람들이 지나가다 처녀에게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저는 바다로 가는 중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이러고 있어요.] 처녀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 갑시다. 우리는 도시로 가는 중이니, 여기서 몇 시간만 가면 되지요.] 낮선 이들이 말했다.
하지만 처녀는 오직 바다로 가고 싶었다. 따뜻한 모래에 앉아 쉬면서 거친 파도에 몸을 맡기고, 또 시원한 바닷바람을 한 것 맛보고 싶었다.
처녀는 낮선 이들의 호의를 정중히 물리치고는 그냥 네 갈래 길에 남았다. 그리고 다시금 오랫동안 혼자 앉아 있었다. 그래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감지 잡히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산으로 간다는 방랑자를 만나기도 했고 농부를 따라 농사를 도와주러 마을로 들어가기도 했으며 어느 아낙내를 도와 장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다에 대한 처녀의 바램은 멈출 수 없었다. 처녀는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아낙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 네 갈래 길에 돌아왔다. 전에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다다른 처녀는 편안하게 자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꼼짝도 하지않고 앉아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그러는 동안 처녀 의 머리숱은 적어지고 휜머리는 늘어갔다. 고요하고 달 밝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멀리서 나지막하게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바다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라고나 할까, 또 산 위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밤에는, 입술에 달콤한 바다 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처녀는 무턱대고 산을 올라가 보기로 결심했다. 산을 오르는 일은 매우 힘이 들었다.
밤이면 산 아래 네 갈래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온이 내려갔다. 추위에 얼어붙은 처녀가 차가운 암벽 틈에 웅크리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산 위에 닿을 수 의심스러운 적도 많았다.
어느 날 처녀는 마침내-거의 포기할 지경에 이르러서야-산정에 우뚝 섰다. 차가운 바람이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그녀의 긴 백발을 마구 흩트러 놓고 옷섶으로 세차게 파고들었다. 처녀는 입을 벌리고 서서 사나운 바람을 몸 속 깊이 들이마셨다. 너무나 지쳐 버린 처녀는 불어오는 바람을 향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산 위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에 그녀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저 아래, 그녀가 앉아 있던 네 갈래 길이 이제는 아주 조그맣게 보였다. 그리고 거기서 갈라져 나간 네 길도 보였다. 첫 번째 길은 대도시로 향해 나 있었다. 그 길은 시내 한복판을 지나서 계속 이어졌다. 두 번째 길은 꼬불꼬뚤 울창한 숲을 통해 작은 오두막을 지나갔다. 그러나 그 길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 번째 길은 낮익은 긱이었다. 그녀가 추수를 도운 적이있던 농부들 마을로 가는 계곡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길은 마을윽 지나더니 몇 군데 작은 언덕을 넘어 비옥한 들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네째 길은 그녀가 셔츠와 바지 바느질을 하던 작은 마을로 향해 있었다. 그러나 이 길도 마을을 지나 계속 이어졌다.
이제 노파가 되어 버린 처녀는 산꼭대기에 서서 추위에 몸을 덜덜 떨었다. 산 앞에서 갈라진 네갈래 길은 산을 빙 돈 뒤, 다시 가까워지면서 넓은 평원에 닿았다. 거기서 하나가 된 네 가래은 멀리 수평선이 비치는 바다까지 쭉 이어졌다.
늙은 처녀는 깎아지른 암벽 위 높은 곳에 앉아 있었다. 멀리 바다와 평원을 보면서 ‥‥‥ 그녀의 눈은 바다, 넓디 넓은 바다를 찾아 헤맸다. 보면 볼수록 일렁이는 파도가 눈앞에 또렷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 멀리, 거친 암벽에 부딪혀서 부서지는 힘찬 물보라가 피부에 와 닿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처녀는 자기가 그토록이나 오래 앉아 있던 저 네 갈래길로 다시 내려갈 힘이 이젠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넷 중에서 어느 길이든 골라서 바다로 가려면 아무튼 내려가야 할 텐데도 말이다.
그녀는 이 네 길 가운데 어느 길도 선택하지 않았고 어느 길도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
이제 여기까지 와서야 비로소 그 모든 길이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생에 단 한 번도 무한히 넓은 바다의 신선한 내음을 맛볼 수 있으리라는 것, 또 평생 단 한번도 거센 파도에 몸을 적실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제서야 비로소 확연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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